임정광복단 상식
16 카드 | odsbig
세트공유
효창원
이 곳은 원래 소나무가 우거진 왕가의 무덤이었으나 일제가 강제이장한 후 194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효창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방 후인 1946년, '민족의 정기를 바로 찾겠다.'며 김구 선생에 의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이곳에 모셔졌다.
의열사
효창원에 묻힌 순국선열 7분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1990년 건립됐으나 관리상 문제로 의열사 제전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문을 닫아두었다. 2016년 상시 개방으로 전환된 뒤, 일반인에게 완전 개방됐다. 영정 봉안 배치 순으로 좌측부터 차리석(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 조성환(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 김구(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이동녕(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의장), 이봉창(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한인애국단 단원), 백정기(남화한인청년연맹 단원) 선생이 모셔져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이 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8년 4월 30일 (사)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가 발족해, 2002년 10월 22일에 개관하였다.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서거까지의 행적이 시대 순으로 진열돼 있다. 전시관 1층 중앙홀에는 선생의 좌상이 놓여있다. 이곳에서만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경교장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됐지만 중국에 있던 김구 선생이 고국에 돌아온 건 3개월도 더 지난 1945년 11월의 일이다. 그것도 개인자격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환영식조차 없었던 입국 현장, 선생은 일제 시대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 소유의 별장 ‘죽첨장’에 자리를 잡는다. 선생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의 이름을 빌려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입국 후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반탁 및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한국독립당의 본부이기도 하다.
홍커우공원
청년 윤봉길이 1932년 4월 29일 의거를 일으킨 공원으로 지금은 루쉰공원이라 불린다. 공원 곳곳에 윤 의사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남아있다.
와이탄 공공마두
의열단 김익상 선생이 상하이 이곳(옛 세관마두)에서 1922년 3월 28일 의거를 일으킨 장소다. 오발이 나 의거는 실패 했다. 김익상 선생은 20년 형을 받고 출소했으나 일제 경찰에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상하이 임시정부 마당로 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활동할 때 사용했던 마지막 청사.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청사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후 피난이 시작됐다.
영경방 10호
상해에 있는 김구 선생 거주지
원창리 13호
상해에 있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시계 교환 장소
매만가 76호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 피난처다. 절강성 가흥시 이곳에 위치해 있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김구 선생은 피치 목사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에 숨었지만 일제의 압박이 거세져 1932년 5월 말 저보성 선생의 도움으로 자싱으로 피난을 왔다. 이곳은 저보성 선생의 양아들 집. 이곳에서 일제의 압박을 피해 남호로 통하는 선상생활을 유지했다.
매헌기념관
홍커우공원 안쪽에 이것이 있다.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중국인들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곳이다.
해염 피난처
자싱에서조차 일제의 압박이 거세지자 김구 선생은 저보성 선생의 며느리 주가예의 친정집으로 피신한다. 자싱 남쪽 이곳에 위치해 있다. 훗날 김구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이 왔을 때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근원을 생각한다'는 '음수사원'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독립당
이 당은 1930년 1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관계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대표적인 독립운동정당이었다. 이 당은 1933년 말까지는 상해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로 이동함에 따라 1934년 1월 항주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일제 측 정보 문서상에는 이 당의 항주 사무소 주소가 세 군데로 나타나 있다. 학사로 사흠방 34호, 40호, 41호가 그것이다
천녕사
난징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 훈련장소이다.
회청교
중국 장쑤 성 난징 시 백범이 난징에 머물 때 살았던 곳이다.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자싱에서 주애보를 올라오도록 해 이 지역에서 같이 살았다. 김구 선생은 고물상 행세를 했고, 이 다리 인근에 항상 도망칠 수 있는 준비를 해 놨다.
난징 리지샹 위안소
중국 정부는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위안소를 복원해 2015년 12월 개관했다.
클래스카드의 다양한 학습을 바로 체험해 보세요!
고객센터
궁금한 것, 안되는 것
말씀만 하세요:)
답변이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