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퀴즈 28개 - [출처] 한글 퀴즈(김슬옹 샘 제공) (돌봄치유교실)
28 카드 | lwh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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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X) *해설: 세종이 만든 것은 우리글, 한글이다.
우리는 한글 창제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있다
(X) *해설: 1443년 음력 12월에 창제되었다. 정확한 날짜 기록은 없다. 세종실록 1443년 음력 12월 30일자 기록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한글 반포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0) *해설: 1443년 음력 9월 상한(상순)에 반포되었다. 그래서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 한글날 10월 9일이다.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1895년) 되기 전에는 공식문자(공용문자)가 아니었다
(X) *해설: 당연히 공식문자였다. 다만 한자가 주류(제1) 공식문자였고 한글은 비주류(제2) 공식문자였다. 한글은 공적 주체인 임금(세종)이 만들고 나라에서 펴낸 각종 문서에 사용되었다.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하급 관리 과거 과목으로 설정하였고 ‘삼강행실’과 같은 국가 윤리를 한글(언문)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규정하였다. 고종의 국문 칙령은 비주류 공식문자로서의 한글(국문)을 주류 공식문자로 선언한 것.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X) *해설: 공동 창제는 공개 연구를 했다는 것인데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1443년 창제 후에 한글 반포를 위한 연구를 집현전 일부 학사들과 함께 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하들(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과 함께 펴내다 보니 공동 창제설이 널리 퍼졌다.
세종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해례본)는 현재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이 남아 있다.(*상주본이 원본이라 인정할 경우)
(X) *해설: 발견된 것이 두 권이다. 어딘가에 또 남아 있을 수 있다.
최만리는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
(X) *해설: 28자의 창제는 1443년 음력 12월이고 최만리 외 6인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1444년 음력 2월 20일이다. 그러므로 창제를 반대했다기보다는 반포를 반대했다. 최만리는 당시 집현전 부제학으로 최고의 학자요 청백리로서 뛰어난 학자였다. 갑자상소 덕에 우리는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과정 등의 여러 문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글을 반대했다고 해서 지금의 시각으로 나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부분 한글을 반대했다
(X) *해설: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1446년 정식 반포 이후 단 한 건의 반대 상소도 없었다. 다만 2류 문자로 철저히 무시했다.
한글 반포 후에 중국은 조선의 훈민정음이라는 새 문자를 주목했다
(X) *해설: 조선은 새 문자 창제 사실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 한자음 표기에 대한 두 권의 책을 공식 출판했다. 동국정운(1448)과 홍무정운역훈(1455/단종3년)을 펴냈다. 특히 홍무정운역훈은 8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으로 명나라 태조의 명으로 펴낸 <홍무정운>의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한 책이다. 이는 중국이 천 년 이상 그들의 발음을 온전하게 표기하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표기한 그 당시 한자 문화권의 지각변동과 같은 혁명과 같은 책이었다. 그런대도 중국(명나라)은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한글은 조선시대 때 ‘훈민정음’이라 주로 불렀다
(X) *해설: ‘훈민정음’은 특별한 때만 쓰였고 실제로는 주로 ‘언문’이라 불리다가 1910년 이후 ‘한글’이란 명칭이 널리 퍼졌다.
연산군은 한글을 무조건 못쓰게 했다
(X) *해설: 16세기 초인 1504년에 연산군은 자신을 비판한 한글 벽서에 분노하여 한글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은 예외로 하였고 궁녀들에게 한글로 노래 가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은 1895년 고종의 국문 칙령이었다
(0) *해설: 고종은 국문(한글)을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이 국한문 혼용문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1894년에는 내각에 지시하고 1895년에는 전국에 반포했다. 이 칙령 자체가 한문과 국한문 혼용으로 발표되어 온전한 주류 문자의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만은 분명하다.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하층민에 의해 발전했다
(X) *해설: 하층민은 ‘평민’이하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에 하층민은 문자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한글을 만든 것도 지배층이고 이를 널리 보급한 것도 지배층이었다. 물론 하층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만든 것이므로 하층민이 한글 창제와 발전의 계기가 된 것도 분명하다.
한글 발전의 최대 공로자는 문학가들이다
(X) *해설: 정철, 윤선도, 김만중, 김천택 등 조선시대 문학가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최대 공로자로 보기는 어렵다. 왕실 여성들과 양반가 영성들의 공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규방가사와 같은 한글 가사를 쓴 수많은 여성 문학가들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 속에서 한글로 얼마나 문자생활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왕실 여성들은 공문서에 한글을 써서 한글의 가치를 높였고 양반가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각종 분야에 한글을 사용하여 한글 발전의 주춧돌 구실을 했다.
한글은 세계 기록 유산이다
(X) *해설: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세종이 1446년에 펴낸 <훈민정음>이란 책으로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일반 공공 문서에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독립신문(1896)에서였다
(0) *해설: 공공 매체에서 띄어쓰기를 한 것은 독립신문이 처음이다. 일반 문서가 아니라면 독립신문보다 20여년 앞서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1877년에 펴낸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에서 띄어쓰기를 하였다.
북한에는 한글날이 없다
(0) *해설: 남한과 같은 한글날은 없다. 대신 1월 15일을 조선글날 또는 훈민정음 기념일로 삼아 기린다. 남한은 반포를 기준으로 북한은 창제를 기준으로 기념일을 삼았다.
‘한글’이란 명칭은 북한에도 쓴다
(X) *해설: ‘한글’이란 명칭은 분단 이전인 1910년이후부터 쓰이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 용어를 남한의 용어로 규정하고 쓰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한다.
‘언문’은 낮춤말로 세종은 ‘정음’이라 불렀다
(X) *해설: ‘언문’은 원래는 훈민정음을 가리키는 보통 명칭이었지만 사대부들이 깔보다 보니 낮춤말이 되었다. 세종도 ‘언문’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정음’이란 명칭은 실제 얼마나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훈민정음’을 특별한 때만 사용한 것으로 보아 역시 학술 차원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정음’이란 명칭을 쓴 듯하다.
한글 자음 ‘ㄴ’은 혀끝이 입천장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
(X) *해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고 했다. ‘는/은’ 등을 발음해 보면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한글 자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떴다
(0) *해설: ‘윽/극’ 등을 발음해 보면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모음을 만든 기본자는 ‘ ·, ㅡ,ㅣ’ 세 자이다
(0) *해설: 각각 하늘, 땅, 사람을 본떴다. 하늘은 양성, 땅은 음성, 사람은 중성을 뜻하는 것으르 우리말에 있는 음양의 기운과 양성모음(ㅏ, ㅗ)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ㅓ, ㅜ)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15세기 훈민정음 기본자는 28자이다
(0) *해설: 자음 17자, 모음 11자 모두 28자였고 이 중 네 글자가 안 쓰이거나 변형되었다.
현대 한글 기본자는 모음자 14자, 자음자 10자 모두 24자이다
(X) *해설: 자음자가 14자, 모음자가 10자이다.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두 합치면 40자이다
(0) *해설: 자음자는 기본 자음자 외에 된소리글자 5자가 더 있어 19자, 모음자는 기본 10자 외에 11자가 더 있어 21자, 모두 40자이다.
현대 한글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 수는 11,172자이다
(0) *해설: 첫소리글자(초성자)로 쓸 수 있는 자음자가 19자, 가운뎃소리글자(중성자)로 쓰이는 글자가 21자, 끝소리글자(종성자, 받침)으로 쓰일 수 있는 자음이 겹받침 포함 27자이다. 따라서 받침 없는 글자는 19*21=399자, 받침 있는 글자는 399자*27=10,773자이다. 받침 없는 글자와 받침 있는 글자를 합치면 11,172자이다. 실제 쓰이는 글자는 대략 2500자 정도 된다.
정조 임금과 정약용, 박지원 같은 위대한 실학자들도 한글을 즐겨 썼다
(X) *해설: 정조는 한글 편지와 한글 윤음서 등을 남겼으나 즐겨 쓰지는 않았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한글 사용을 싫어하였고 사용 자체를 거부하였다.
구운몽, 서포만필 등 한글 소설을 남기고 한글을 나랏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는 허균이었다
(X) *해설: 김만중이다. 김만중은 한글 소설도 남겼지만 평론집인 <서포만필>에서 한글을 국서(나랏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로는 혁명과 같은 주장이었다. 물론 허균도 홍길동이라는 걸작 한글소설과 한글 표기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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